큰 기쁨의 좋은 소식: 죽어가는 때 주신 영적 회복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죽어가는 때 주신 영적 회복

기쁨의 좋은 소식:

죽어가는 주신 영적 회복

(레베카 러셀 안수집사, 헐리우드 제일장로교회, 캘리포니아)

목사님, 하나님은 목사님을 사랑하십니다. 비록 목사님의 교회가 저희  교회와 똑같이 말 못할 정도로 영혼 부흥, 동역자들에게 비전 제시, 목회의 재창조 등의 많은 필요가 있더라도 말입니다. 이런 좋은 목표를 만들더라도 우리는 사랑받지 못하고, 알아주지 않습니다. 아마도 우리 교회와 소명이 다 죽어가고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저는 안수집사로서 주님께서 목사님들 옆에 계신 것을 보게 도와 달라고 기도하면서, 중보기도를 드리면서, 펠로우쉽 목사님들께 전하고 싶습니다. 목사님들 교인들 가운데 삼위일체 공동체를 지어가는 어려운 일에 죽도록 헌신하고 싶고, 앞에 있는 기쁨을 나누고 싶어 하는 평신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형제 자매들이 우리들의 회중 가운데 매우 적은 수인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들은 듣고 흡수하며 더 큰 이야기의 부분이 되라고 목사님이 도전해 주기를 원합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 왕비에게 상기시킨 말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아닌 척 하지 마세요: 우리 모든 교회와 공동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주 잘못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탈진과 피로, 재정적인 손실, 사람들 사이에 쌓이는 고통, 정신 건강 문제, 중독, 세계적인 딜레마에 대한 실망 등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들은 공동체의 병원입니다.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심어주는 그런 병원입니다. 너무 많은 일입니다. 정말 힘듭니다.

출애굽기 18장 18절에 모세의 장인은 모세가 영적으로 육신적인 목회의 피곤함으로 무너질 것을 내다 보면서: “그대와 그대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개인적으로 그리고 우리 교회에게는 바로 이것이 펠로우쉽 커뮤니티의 정기모임이 큰 선물이었습니다. 한때 죽어가고 있던, 하나님의 것이 아닌 우리 자신의 특별한 꿈에 죽어 가고 있던 저희 교회에 펠로우쉽 커뮤니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준비하는 생명줄이었습니다. 할리우드 제일 장로교회는 시작할 때부터 펠로우쉽 커뮤니티 멤버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담임목사님이 안 계신 몇 년간, 우리 몇 분의 장로님들과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위원장님과 저를 포함한 평신도 지도자들이 정기모임과 지역 행사에 참석하였습니다. 우리는 거의 절망 가운데 와 있었습니다. 우리 적은 그룹이 도착했을 때, 우리는 환영을 받았고, 사랑받았고,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토록 기도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심오한 하나됨과 격려와 친밀감을 저희 당회로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복음전도와 갱신에 대한 세미나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새해에 소망과 방향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담임목사님을 청빙하고 있다는 리본을 달았습니다. 우리는 교회로서 엉망이란 것을 알았지만, 동시에 우리 교회의 아름다움을 깨달았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셨다는 소망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직 우리가 가진 것은 오병이어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조롱하지도 않으시고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문제를 주님께 드린 것처럼 손사래를 치시지도 않으십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의 연약함과 중대한 어려움 속에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개입하시고 계셨습니다,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11월은 우리가 실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좋은 달입니다. 단풍은 나뭇잎이 죽으면 잎이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흐르는 수액은 죽어가는 작은 것들을 살립니다. 우리는 아직도 할로윈 절기의 캔디와  죽은 자들의 날의 카타르시스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장로교인들은 종교개혁일을 지킵니다. 이 날에 우리는 비텐버그 성당 문에 마틴 루터의 95개 조항을 못을 박아 1세기에 걸친 종교전쟁과 전쟁의 소문, 사회와 경제의 대격변을 일으킨 것과 개혁신학의 아름다움, 즉 영적, 문화적 르네상스 시대를 도발시킨 것을 기억하는 것이지요.

그처럼 죽음의 날들에 있는 어떤 교회들은 주님과 함께 애통해 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우리가 버림 받았다고 느끼는 날들을 인내하면서 우리는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기독교는 죽어가는 것에서 무한한 소망을 갖게 하고 오직 하나님만 보실 수 있는 미래의 기쁨을 발견하게 합니다. 같은 이유로, 노아는 최소한 50년 동안 방주를 지으면서 세상사람들이 미쳤다고 하는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비는 내렸습니다. 그는 다가오는 구원을 위해서 그의 목숨을 포기하지 않는, 미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무언가를 바라고 기다립니다. 그들의 인생 가운데 해결되지 않는 이야기를 살아가면서 그리고 적든 크든 죽음을 맞다 드리면서 말입니다. “죽기 전에 죽어라. 죽은 후에는 기회가 없다” C S. 루이스가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라는 책에서 도전한 말이지요.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당신만이 알고 계신 이유로 당신을 숨기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도 버림을 당한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계속해서 우리가 버림을 받지 않았다고 약속하시는데도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려고 이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하나님 손에 우리의 이름을 적으셨고 이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하나님의 생명책에 우리의 날들을 적어 놓았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모든 인류역사에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모든 것이 잃어버린 것처럼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계십니다. 효과적인 목회 전략이나 목표보다 목사님과 목사님의 팀들을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불타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는 갈급함,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바라는 갈급함은 하나님께 보물이요 향기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모든 자비하심의 추수감사 절기가 다가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요. 죽음을 이기시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세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 앞에서, 교회의 개혁, 오직 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