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동역자에게 드리는 글 Vol. 21

목회 동역자에게 드리는 글 Vol. 21

저는 지난 7월과 8월에 4주간의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작은 교회에서 설교할 분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수 있으나 잘 진행이 되었습니다. 두 분의 지역교회 목사님들과 부교역자, 그리고 넷째주일은 ‘장로 설교’ 주일로 하였습니다. 3분의 주요한 장로님들이 10분씩 돌아가면서 주님께 가르침을 받은 것을 나누었습니다. 정말 참 좋았습니다. 그중에 한분인 도나는 하나님께 듣는 것에 대하여 나누었습니다. 제가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녀는 제가 매주 다시 배우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연구하고 기도하고 설교 준비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배우는 중요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이 도나에게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하여 설교한 직후에 자신이 주님께 더 관심을 갖게 되고, 놀랍게도 하나님이 그녀의 인생에 꼭 필요한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희 세대(아직도 젊은 63세)의 복음주의자들은 최근 몇 년간 몇 분의 가장 영향력있는 저술가와 선생님들을 잃었습니다. 완전한 리스트는 아니지만 헨리 나우엔 (1996년 소천), 브레난 매닝 (2013년), 달라스 윌라드 (2013년), 저의 멘토이신 유진 피터슨 (2018년), 그리고 두 분이 지난 몇 주 전에 소천하셨는데 론 사이더 (7월 27일)과 프레드릭 부에크너 (8월 15일)입니다. 정말 큰 손실입니다. 저의 책장은 그 분들의 책으로 가득 차 있고 저는 아직도 정기적으로 그분들의 지혜로운 조언을 읽고 있습니다. 해리 포터 팬의 가치로 치자면 마치 덤블도어 사무실에 걸려 있는 고 그리핀도의 벽걸이 초상화와 같은 것입니다. 때로 그 분들은 저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앞선 세대들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하는데 사랑을 받고 영향을 미치던 분들이 주님 품으로 가게 되면 “누가 저 분들을 대신 할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새로운 저술가와 선생님, 설교가와 목회자를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주위를 돌아보면 아직 그 질문을 하게 됩니다, “누가 그분들을 대신할 것인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위에 언급한 남성들 (그렇습니다. 모든 분이 남성이라는 사실은 가슴아픈 현실입니다. 그건 우리 시대와 어리석음을 반영합니다)은 저마다 독특한 능력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 분들은 서로가 너무 달랐습니다. 나우엔은 천주교 신부셨고, 매닝은 카리스마적인 파직한 신부였고, 윌라드는 USC 교수셨고, 피터슨목회자셨습니다. 사이더는 복음주의자들을 복음은 사회활동 참여를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상기시켰는데, 심지어 성문제와 낙태에 대한 전통적인 입장에 반하는 진보적인 입장을 반영하려고 줄곧 성경을 인용하곤 하였습니다. 부크너는 안수를 받은 목사로 전세계에 설교 초청을 받았지만 목회는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소설과 설교, 회상록과 신학적 사색을 쓰는 저명한 저술가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은 부크너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것에 너무 확신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투기적인(위험한) 신학을 제시하거나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복음이 가까이 하면 할수록 우리를 압도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대신 할수 있을까?” 이 질문은 아직도 저에게 남아있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그 질문은 도나장로님의 하나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한 설교와 경험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저는 이 질문을 모든 분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질문과 제가 느끼고 있는 공백에 대한 답을 갖고 계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2022년도에는 그 역할과 타이틀이 다를 수 있습니다. 블로그 저술가일수도 있고, 가정교회 목회자들일수도 있고, 직접 출판하는 저자일수도 있고, 팟캐스트 호스트일수도 있고, 영화제작자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 다음 세대에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인물이 당신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당신은 새롭고 신선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계시고 인도하고 계신가요? 주님께서 부르시는 일에 ‘네’라고 대답할 수 있으신가요?

 

마지막으로 제가 이 글에서 인용한 분들은 예수님 안에서 더 깊은 신앙의 차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각광을 피하는 어떤 겸손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때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다스릴 수 있는 작은 자아을 소유하신 분들이었습니다. 누가 그분들을 대신 할 수 있나요? 누가?

 

그리스도의 평강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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