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알고 있는 것의 깨달음

이미 알고 있는 것의 깨달음

유대인의 안식일 기도가운데 나오는 구절입니다: 날들이 지나가고 해들이 지나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적들 가운데에서 보지 하고 걸어갑니다. 주님, 우리의 눈을 있게 주시고, 우리의 마음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임재가 번개와 같이 우리가 걸어가는 어두움을 밝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들 그러신지 모르지만, 저는 나이가 들수록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새로 배우게 됩니다. 제가 추측하기로는 여러분 대부분은 가족들에게 예수님의 제자로 여겨지면 추수감사절 식사에 당연히 기도를 하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는 것을 경험하고 있을 겁니다. 아니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족들이, 당신이 목사, 교회 지도자, 아니면 “종교적”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전화를 하는 한 사람으로 여길 것입니다.

2월의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제가 책상에 앉아서 주일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평소에는 전혀 전화를 하지 않던 앤의 사촌이었습니다. 그를 알기는 합니다만 그리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앤의 삼촌(그 사촌의 아버님)이 몇 가지의 건강문제로 고통을 받아왔었고, 아마도 그 일 때문에 전화를 했으리라고 추측은 했습니다.

이라고 부르고는 번의 깊은 한숨과 떨리는 목소리로 저는 지금 아버지와 함께 포틀란드 병원에 있어요, 그리고 병실에서 형과 누나랑 함께 있는데 아버지가 숨을 거두실 같아요. 아버지가 들으실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도 함께 들을 있게 스피커폰을 켜도 될까요? 그리고 아버지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실래요?”

그 가족들의 무거운 슬픔을 느끼면서, 저도 약간 놀랐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서 가끔 만나기도 했지만, 신앙에 대한 관심은 없었었는데, 갑자기 신앙에 대한 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얼마동안 대화를 나누고 그들은 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화기를 앤의 삼촌 귀에 갖다 대고, 저는 삼촌을 위해서 그리고 전 가족들을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에 막 돌아왔을 때 전화가 또 걸려왔습니다. 바로 그 사촌이었습니다. 전화소리 주위가 매우 시끄러웠는데, 분명히 누군가가 울고 있었고 사촌의 목소리는 더듬고 있었습니다. “, 아버님이 방금 돌아가셨어요. 여기 병실에 우리 모두 모여 있어요. 형과 누나, 배우자들, 아이들, 손자들. 우리와 이야기하고 위해서 기도해 줄래요?

직접 보지도 못 하는데 듣고 있는 많은 사람들,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500마일 떨어진 병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분명히 그 곳은 거룩한 땅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임재로 삼촌은 사랑을 받으셨고, 유가족들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제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배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마음 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질문을 하는지, 의심이나 신앙의 상태가 어떤지 알지 못합니다. 최소한, 관계를 통해서나 선택이나 위기를 통해서 그들이 그것들을 나타낼 때까지는 모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누구나 신앙에 대한 관심은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다시 배웠습니다.

이 같은 거룩한 땅의 경험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위기의 상황에서, 특별히 죽음에 가까워져서 간절하게 되었을 때, 본능적으로 그들은 위를 쳐다 봅니다. 천국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진짜 살아 계신지, 그런 고통 가운데도 임재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주관하시고 계신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 순간은 분명히 한 인생이 사라지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 어떻게 위를 봐야 할지 모르기에 저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서 전화한 것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배웠습니다.

오래 전에, 제가 하나님께서 비지네스 경력을 끝내고 목회자로 부르신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목회를 오래 하신 목사님과 함께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제가 그 목사님의 목회 인생과 설교, 그리고 교회와 교단에 대한 쉴 새 없는 질문들을 다 받아 주시었습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목사는 다르게 보여지는 것 아니냐고 물었을 때, 그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바로 당신이 목사이기 때문이지요. 당신은 때때로 관계 속이나 대화 속에 환영을 받지 못할 것이요. 사람들은 목사들에 대하여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러나, 당신은 목사가 아니면 결코 경험할 없는 거룩한 땅의 체험에 초청을 받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저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히 압니다. 목사들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여러가지 모양의 시간과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이 생사의 갈림길을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요청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하심을 보게 도와 주고, 위를 쳐다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저는 우리의 부르심은 늘 준비하고 살펴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니면 … 그저 날들은 지나가고 여러 해들은 사라질 뿐입니다. 놀라운 기적들을 못 보고 지나갈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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