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오늘 하루

휴, 조금 피곤합니다. 부활절을 지난지 며칠이 되었습니다. 부활절 기간동안 풍성함이 있었지만 조금 피곤합니다. 매일같이 사순절 묵상과 소식지 칼럼, 시와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성경공부와 특별예배 준비를 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사역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내적인 에너지가 약해졌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도 부활절이나 다른 사역으로 생동감을 떨어지게 하는 것이 저와 똑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일년에 한 두 번 이런 경험을 하면서 저 자신에게 놀라곤 합니다. 몇 년이 걸쳐서 제가 마침내 깨달은 것은 – 한 번에 하루씩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기간을 준비하는 것과 중요한 이슈를 해결하거나 혹은 중요한 큰 결정을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시기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루를 집중해야 합니다. 바로 오늘.

밤이 지나가고 날이 우리 앞에 밝았습니다…” 앵글리칸 공동 기도문에 나오는 아침 기도문입니다. 기도문은 계속됩니다.

마음과 정신으로 기도합니다.

선물로 주신 날을 기뻐하면서

하나님의 임재의 빛이 함께 하소서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게 하소서

지금부터 영원까지, 아멘

그렇습니다. 오늘 하루에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불타는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수상감독이며 현재도 존경받는 영화감독 윔 웬더스는 최근 “완전한 날들”이라는 새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일본에서 촬영이 된 영화인데 토쿄의 공중 화장실을 청소하는 히라야마 씨의 하루 일과를 찍은 영화입니다. 규칙적으로 일하는 주인공 히라야마 씨는 일을 잘 하고,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음악을 듣는 분입니다. 관객들은 그의 단순하고 풍성치 못한  하루의 일상생활을 보면서 질문이 생겨 납니다: 생활이 충분한건가? 하루 생활? 이게 만족한 생활인가? 당신의 대답에 당신은 놀랄 것입니다.

저의 친구들 가운데 최근에 큰 수술을 받은 한 친구가 있고, 다른 친구는 연로하신 아버님이 소천하셨습니다. 이번 주간동안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발견한 것은 제가 … 하루만 기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랜 기간, 몇 달이 걸려서 끝내지 못할 슬픔과 회복 기간, 계획해야 할 일들, 끝내야 할 일들이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치유와 임재를 위한 기도를 하루 동안 드리는 것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내일은 또 다른 기도제목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근처에 복잡한 도로 주변에  2주일 마다 새소식을 붙이는 옥외 게시판 (예, 일일이 글자를 하나 하나 붙이는 플라스틱 판입니다) 이 있습니다. 간단하고 의미가 있는 문구를 선택하여 싸구려 교회나 나쁜 말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한 달 전에 저는 다음과 같이 붙였습니다: 주님, 오늘 어떻게 주님을 기쁘게 드릴 있을까요? 그런데, 2주 동안 가장 그 말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 저였습니다. 그 사인 옆을 운전하며 지날 때나, 교회에서 바라볼 때마다 그 날 하루 일과를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성경 구절을 읽는 것이 저에게는 좋은 아이디어를 주었습니다:

  •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시 147:11).
  •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잠언 11:1).
  •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잠언 12:22).
  •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깨닫는 것이라 (예레미야 9:24).

과연 내가 이런 사람이고 내 성격과 행위에서 이 같은 일들이 나타나고 있는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매 시간 매일 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있습니까? 오늘, 하루.

저희 교회 근처의 넓은 공터 중앙에 15 피트 높이의 나무 십자가가 있습니다. 저는 그 나무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공터에 우뚝 솟아 있는 모습에 항상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주변 이웃 집들과 주님들 만이 아니라 복잡한 거리에서 잘 보입니다. 그 십자가가 평범한 우리 커뮤니티의 일상생활 가운데 알던 모르던 간에 거기 서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이나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날이나 거센 바람이 불어 쳐도 견뎌 내며 서 있습니다. 일년 동안, 우리는 교회력에 맞는 색깔의 천을 십자가에 걸어 놓습니다. 성금요일은 물론 검은 색이었습니다. 그 날, 십자가에 걸린 검은 색의 천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죽으신 어두운 날과 왜 그렇게 하셔야 했는지를 기억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십자가의 천은 하얀 색입니다. 주님이 살아나셨다는 승리의 소식을 알리는 색깔이지요. 이 두 가지 색깔은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가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복음은 결국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모두가 용서 받았고 (십자가), 모두가 것입니다 (부활).”

이 두 가지가 한 주일, 한 달, 올해, 우리 평생, 모든 영생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 오늘 이 하루에 충분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함께 하시길,

단 바움가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