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들었던 가장 인상적인 설교(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들었던 가장 인상적인 설교(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들었던 가장 인상적인 설교(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설교에서 기억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대부분의 경우,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신학적인 개념을 설명한 이야기이거나 관심을 갖게 한 비유일 것입니다.

저에게는 뇌가 어떻게 일하는가에 대한 책을 읽는 중에 이야기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어느 분자 생물학자가 쓴 ‘뇌 법칙’이란 책이 있는데, 그 법칙가운데 4번이 “우리는 지루한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이었습니다.

즉, 우리 모두가 경험한 것은 우리의 뇌가 매력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지루한 것에는 따라가기가 정말 힘들다는 것입니다. 마치 종일 계속되는 오리엔테이션이나 직원회의에는 지루해 하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텔레비전 쇼는 몇 시간씩 보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뇌가 지루한 것에는 집중하지 않는다’라는 법칙이 신학교나 강단에서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무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설득력있는 진리 선포에만 초점을 맞추고, 예화는 잘해야 치장용, 아니면 사탕발림 정도로 취급을 합니다. 물론 복음에 연결된 진리선포의 중요성을 없애자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힘있는 예화를 통하여 진리선포가 생명력을 가지게 하느냐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 자신들의 설교에 대하여 정직해진다면, 청중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설교의 한 부분에 대하여는 거의 시간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

왜 스토리텔링을 연구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는걸까요? 저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예화사용을 거의 하지 않는 기술적인 이유는 설교작성자에 의해서 완성되어야 할 퍼즐의 마지막 부분으로 취급받기 떄문입니다.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성경주해를 하고 개요를 만들고 나서, 자신들이 제시하는 신학을 스토리텔링으로 보완하기 위하여 그 때야 준비하게 됩니다. 설교작성 과정에서 제일 나중에 들어오기에 스토리텔링은 정작 받아야 할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합니다.

 

역사적인 이유는 주관적인 스토리텔링보다는 객관적인 진리가 강조되는 산업혁명 이후의 서구문명 영향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20세기에 100년이 넘게 설교 교과서로 사용된 헨리 그라디 데이비스의 책 ‘설교 디자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설교에 흥미를 부여하고, 인간적인 터치와 인간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설교를 만들기 위하여 예화를 사용하는 것은 논쟁의 대상이다. 설교자가 무언가 적절한 것을 말하려면, 그리고 자신의 생각의 표현이 명확한 일반화의 왜곡됨에 유별나게 부각이 된다면, 설교를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인위적인 장식이 필요하지 않다.

헨리 그라디 데이비스, 설교 디자인, (필라델피아: 포트레스, 1958), 257쪽.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비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역설적이지만 그 답은 (최소한 부분적이라도) 뇌의 내부활동에 대한 최근 발견이 된 과학분야 (산업혁명 때 처음 개발된 기술)에서 예화가 얼마나 강하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단에서 스토리텔링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저 “잘 된다”보다는 근거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최소한 한 가지 좋은 이유를 소개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을 스토리텔링이 정보전달을 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하도록 창조하셨다면,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를 어머니의 태에서 세포 하나로부터 지으셨다고 믿는다면, 우리 설교에 들어있는 신학적인 아이디어를 보완하기 위해 사용하는 스토리의 강력한 힘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스토리텔링의 신경과학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시면 Fuller Seminary Storytelling & The Preacher에 있는 온라인 강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두번째 근거는 예수님이 스토리텔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심오한 신학적인 진리를 전달할 때 비유를 사용하는 것을 전혀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괜찮지 않은가요? 그 이유가 성경적인 것인가요? 아니면 문화적인 것인가요?  예수님인가요? 아니면 스토리텔링의 힘과 쓸 곳을 없애 버린 성경의 저자들인가요? 서구사회의 문화적인 편견인가요? 아니면 크리스천의 수준높은 교육인가요?

저는 지난 3년동안 매주 설교하시는 목사님들과 다른 목회자들을 돕기 위해서 짧고 강력한 스토리와 비유를 발굴하는데 헌신해 왔습니다. 더 필요한 정보는https://thepastorsworkshop.com/about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스튜어트 스트라찬 주니어

스튜 스트라찬은 thepastorsworkshop.com의 창시자와 관장인데, 이 온라인 예배자료실은 하나님의 말씀과 현대사회를 연결하는데 초점을 두고 거기에 사용될 예화와 인용, 그리고 기도문을 포함한 독특한 내용들을 제공합니다. 현재 그는 부인 콜린과 잭과 엠마의 두 자녀와 함께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