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란 무엇인가요?

기도란 무엇인가요?

 

 

 

 

 

 

 

 

목사가 잘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모든 것이 실패할 때, 설교를 망치고 창조성이 더디어지고, 팬데믹이 예배를 방해하고, 교인들에 대한 인내가 약해질 때 우리는 기도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가장 높고 귀한 소명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다음 질문이 따라옵니다. 기도란 무엇인가요?

개혁신앙과 칼빈주의로 꽉 차 있는 내 자신도 외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모르시는 것을 기도하지는 않잖아!” 기도란 도대체 무엇인가요?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할 줄을 모릅니다.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특정한 기적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과 실망하지 않기 위하여 매우 애매하게 기도하는 것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수백만 명이 동시에 기도드림으로 우리의 기도가 매우 작아졌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으실까요? 짐 케리가 주연한 전능한 브루스 영화도 이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하나님으로서의 요약된 제약은 기도제목들이 처음에는 파일함에 넣습니다, 그리고 붙이는 메모지로 바뀌고 나중에는 이메일로 바뀌는 그 숫자가 1,527,503입니다. 브루스가 초인간적인 속도로 대답을 하는 매우 과열된 하루가 지나자 응답되지 않은 기도제목은 3백만을 넘어갑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왜 기도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란 무엇인가요? 당신도 경험했던 일일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그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하고 완전히 잊어버렸는데, 그들이 다시 와서 기도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면 기도제목을 갖고 기도는 하는데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하기에 이름만 부르거나 아니면 건성으로 하는 기도보다 더 많은 것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알 때가 있습니다.

팬데믹 기간동안 대부분의 우리는 기도하고 기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Covid-19으로 550,000명이 죽었습니다. 아직도 병원 침대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굉장합니다. 경제는 아직도 침체되어 있습니다. 팬데믹 (마스크, 사회적 거리두기, 백신)을 분열된 정치적인 이슈로 만드는 상상할 수 없는 범죄를 동반한 신랄함은 더 커가기만 합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기도란 무엇인가요? 저는 2008년도에 미네소타주에 있는 새인트존 대학에서 한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대답에 대한 힌트를 얻은 적이 있었는데, 그곳은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사용되는 장소였습니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 50명의 수도사들이 커다란 수도원에 날마다 기도하러 온 것을 목격했습니다. 하루에 세 번, 1866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평화시에나 전쟁때나, 경제공황이나 불경기 때나 호경기 때나, 산업혁명 시기나, 우주선 발사 때나, 인종 문제가 있을 때나, 기술의 급성장 때에도 언덕 위에 있는 수도원교회에서는 기도하는 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항상 기도했습니다. 기도란 무엇인가요? 금세기동안 세상이 잘못 되어간 것을 볼 때, 기도가 무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인트 존 대학에서 저에게 흥미로웠고 아직도 흥미로운 것은 만약 계속 기도하는 공동체들이 하나님이 세상을 대하시는 복잡한 공식 속에 들어가지 않았더면 지금의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세상은 오래 전에 연기로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게 하소서, 주여. 시편 기자는 시편 141편에서 기도합니다.

            2020년 6월에 팬데믹이 혼란스럽게 모든 사람을 가두었습니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산타로사에 있는 저희 작은 교회는 짧은 기도를 적은 쪽지를 앞뜰에 있는 작은 세 그루의 ‘기도 나무들’에 달도록 광고하였습니다. 교인들과 방문객들, 이웃사람들, 아이들, 가족들, 믿음의 식구들, 안 믿는 사람들. 수많은 기도들이 마치 가지에 열린 열매처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 당신이 필요합니다! “저는 암에 걸렸습니다. “이 바이러스가 속히 없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안전치 못한 집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하나님, 축복합니다” 어떤 쪽지에는 심지어 43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12월에 내리는 비와 바람은 마침내 쪽지들을 나무에서 떨어지게 했습니다. 저는 땅에 떨어진 젖은 기도 쪽지들을 주어서 보관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저도 정확하게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주께 말하고, 기도하고, 불어 올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제 사무실에 있는 큰 광주리에 놓여져 있는 기도쪽지들은 저에게 매일같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화를 하자고 초청하시고, 명령하시고, 호소하고 계시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 하십시다. 기도의 광주리들이여.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게 하소서, 주여.

목사가 무엇에 소용이 있습니까? 그 답을 저는 항상 알지는 못 하지만, 어떤 때는 조금 압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압니다 – 기도하는 목사는 무언가에 소용이 있는 목사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