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에 있는 빛의 사람들
저는 우리 사회에서 되어져 가고 있는 일에 대하여 모두가 똑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굉장한 문화 위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는 매일같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저는 10월 3일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이 글을 읽으실 때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습니까? 날마다 새로운 일들이 발생합니다. 현 시점에서 미국정부는 폐쇄가 되었는데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관세는 높아지고 동정심은 줄어들었습니다. 오랜 우방국가는 버려짐을 당하고, 오랜 적대국가의 지도자들을 포용합니다. 불법이든 합법이든 이민자들은 폭력 아래 살고 있습니다. 유색인종과 여성들이 빠른 속도로 감가상각이 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더 이상 자유롭지 못 합니다. 폭력적이고 경멸적인 언사가 모든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의료혜택과 빈곤방지책들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진보적인 시들과 주들, 그리고 정책들이 군사적인 개입의 대상이 되고 세워놓은 예산이 취소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를 넘어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어떻게 취급을 당하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고, 영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대부분의 독실한 크리스챤들은 당혹하고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제가 예수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그 대답은: “달라야 한다” 입니다.
2세기와 3세기 두번에 걸친 흑사병으로 인해 로마제국의 1/3 인구가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병자들과의 접촉을 피하려 도시에서 도망을 갔을 때, 마지막으로 사회를 지킨 것은 바로 교회였습니다-기독교인이던 비기독교인이던지 상관없이 간호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초월하는 소망을 나누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들의 돈을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시간을 할애했고, 실제로 자신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홀로 죽어가지 않도록 하였기에 그들은 죽어갔습니다. 많은 이교도들이 그들이 받은 치료로 인해 생명을 구했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직접 보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 바로 다름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히틀러와 나치당은 세계를 제압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문화마저도 제압하였습니다. 그들은 교육, 정치, 사업, 군대, 예술과 오락 … 그리고 교회의 지도력을 제압하였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과 목회자들은 독재를 지지했거나, 수동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따라서, 교회와 정치권은 차이가 전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고백하는 교회 중 소수는 그 위험을 인식하고 활동적으로 저항하였습니다. 수백명의 목회자들이 감옥에 갇히었고, 많은 수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것은 … 다름이었습니다.
1960년대 미국의 인권운동은 인종차별이 없는 사회를 지지하였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버밍햄 감옥에 있을 때 타이른 목사들을 포함하여 끊임없이 백인 기독교인들의 저항을 받았습니다. 여러 시가행진과 1963년의 워싱톤 DC의 집회의 사진에는 군중 속에 소수의 백인들이 찍힌 모습이 있습니다. 유대인 라비인 아브라함 헤스켈은 흑인들과 함께 시위군중의 맨 앞에서 킹목사와 함께 서 있었던 드문 백인남성이었습니다. 그것이 … 다름입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언덕 위에 있는 도시” 와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것은 물을 거스려 헤엄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그것이 세상 일은 제켜놓고 영적인 일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거나 폄하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활발하게-투표, 저항, 행진-을 비폭력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차분하게 해야 합니다. 거품을 품고 논쟁하는 것보다는 친절하게 대화를 하는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보다는 관계를 유지해야만 합니다. 이민자들과 피난민들과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픈 엄지손가락처럼 튀어나온 것과 같은 것이고, 언덕 위의 도시가 어느 방향에서든지 보이는 것이며, 아주 작은 불꽃이 전체 환경을 바꾸는 것과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매우 …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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