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 남 (보여 주기가 아니고)

가장 위대함, 가장 좋음, 최신식, 가장 혁신적임, 진짜 원조, 화려하고, 섹시하고, 능력있고, 앞서가고, 유명한. 이런 단어들은 우리 문화들을 선도하고 유행을 바꿔 나가는 말들입니다. 어제의 뉴스나 경험, 책이나 영화나 테드 토크나 앱처럼 지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루한 것을 싫어합니다. 우리는 무언가 참신하고 장관이고 놀라운 것들을 원합니다. 일단 얻고 나면 또 다른 것을 원합니다. 불행하게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문화적인 갈증에 매우 민감합니다. 크리스쳔들은 운동을 늘 하고, 열심히 일하고 바쁘게 보이지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교회가 잘 하는 (혹은 잘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나열하면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무언가를 기대할 것입니다. 바로 이겁니다: 우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금 무어라고 하셨어요? 그것 뿐이예요? 그렇습니다, 그것 뿐입니다. 우리가 나타 나면 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보여주는 것은 능력이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아드레날린에 중독된 문화도 있습니다. 아주 드물게, 전혀 없는 것이 아니구요.

저는 작은 교회인 캘리포니아 산타 로사 코브 교회에서 이런 현상이 최근에 나타났음을 보았습니다.  80대인 크리스티나와 렌이 52세된 아들을 불행하게 잃고 장례식이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데비스에서 열렸는데 … 코브 교회에서 10명의 교인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분들을 사랑하고 사망의 골짜기를 같이 걸어간다는 것을 알리려고 단지 보여 주기 위하여. 리사의 심각한 만성 건강 문제가 있을 때에, 약속 장소에 가는 차편이 필요할 때, 정원일에 도움이 필요할 때, 10살짜리 딸 로지를 교회에 데리고 가기 위해 픽업해야 할 때, 코브 교회 교인들은 신실하게 자원하여 대신 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누군가 수술을 받거나 아플 때 또는 임신하여서 식사준비를 도와 주어야 할 때, 코브 교인들은 음식을 가지고 현관문에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인사와 기도를 나누었습니다. 한 달에 한번 지역 쉘터에서 무숙자들이 교회에서 하루 숙박을 위해 왔을 때, 따뜻하고 맛있는 여러 가지 종류의 음식만이 아니라, 교인들이 나와서 식탁 옆에 앉아 주고, 이름을 물어보고 대화를 하려고 나타났습니다.  

지루하지요? 헤드라인을 만드는 일들이 아니고, 교회 좌석을 채우는 일도, 책을 쓰는 일도, 그들의 영화를 찍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지루할 수 있지요 … 바로 당신이 상실의 고통을 겪거나 라이드나 음식이나 대화할 상대가 필요하지 않다면요. 누군가 나타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도 여러분의 교회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상황이라 다르게 보여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제자들은 단지 참석하는 것을 잘 해야 합니다. 어느 때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때는 정말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참여하는 것 그 자체는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 점수를 따지 않고 광고효과도 없지만 사람은 누군가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스타 운동선수가 어린이 병원을 방문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운동선수들을 두 가지 그룹으로 분류합니다: 기자와 사진기자들이 오기 바로 전에 도착하는 선수들 … 그리고 모든 기자들이 떠나고 나서 오는 운동선수들. 참여.

석기 시대(2007년)에, 라이언 고스린은 라스와 진짜 소녀 라 불리는 영화에 출연하였습니다. 라스는 위스콘신 주 작은 마을에 사는데, 정신적인 환상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한 여자친구를 만나는데 그 여자친구는 실물크기의 인형이었습니다. 그는 그 인형을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소개를 합니다. 라스가 사는 마을사람들은 라스가 병을 고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환상 속에 들어가 같이 지냅니다. 그들은 그 인형이 진짜 사람인 것처럼 대합니다. 라스가 조금씩 병이 낫기 시작하고 그녀를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때, 그는 그의 인형 여자친구가 매우 아프다고 말합니다. 동네사람들은 인형여자친구에게 카드도 보내고 꽃도 보내곤 합니다. 라스가 하루 저녁에는 인형여자친구를 자기 침대에 누이고 교회에서 온 나이든 여인들과 거실에서 같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갖고 왔습니다. (물론, 케서롤도요, 위스콘신이니까요!), 뜨개질도 함께 가져 왔습니다. 그리고 침묵이 흐릅니다. 무척이나 어색한 장면입니다. 드디어 라스가 말합니다 “제가 무엇인가 할 일이 있나요?” 한 여인이 말하기를 “아니요 … 우리는 여기 앉아 있으려고 왔어요. 그건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사람들이 하는 일이예요, 라스. 당신도 여기에 와서 앉아요.”  

존재한다는 것 … 매우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공간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것이 매우 장엄한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 일이 좋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육신-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앉으시려고 오셨다-이라고 부릅니다. 나타나신 것이지요.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단 바움가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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