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것

속보. 요즈음 여러분의 전화에 이 말이 뜨고 있나요? 속보라는 말은 전쟁이나 재앙이 닥쳤을 때 쓰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유명인들의 잘못이나, 스포츠 팀이 게임을 이기거나 정치인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할 때 사용을 합니다.  속보라는 말이 우리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사용되는 단어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쉽게 작은 일은 과장하여 크게 만들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속보”라는 단어는 왜곡되고 남용되어서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와 한 사람으로서 점차 저의 어휘력이 퇴화해 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것이 영어 단어가 발전을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어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추상적으로 만드는 것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복음주의라는 말은 크리스쳔들에게는 수십년 동안 교회의 많은 교단들이 활용한 영적 부흥운동을 설명하는 단어였습니다. 복음주의라는 말은 전통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그룹들에게는 성경에 관한 높은 관점이나 개인 구원의 필요성,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것과 사람들의 요구에 맞도록 성경적으로 사는 것들을 뜻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 의미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권력을 휘두르는 리더들과 연결을 맺으려는 백인 유권자들이 대부분인 미국 보수성향의 정치세력들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복음주의 정치에 몰입한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기독교 신앙과는 관계가 전혀 없는 듯 보입니다. 저는 “복음주의”라는 단어가 완전히 망가졌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분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쓰는 단어가 망가지는 것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라는 단어는 너무 가혹하고 심판적인 단어로 여겨져 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은 인간이 어려움에 처해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더 일반적인 의미인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와는 대조적입니다. 대속적 속죄이란 말도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된 목적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작고한 성공회 주교였던 존 셀비 스폰지가 다시 서술한 신앙의 주요 교리가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십자가를 세상의 죄를 위한 희생이라는 관점은 하나님의 원시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야만적인 생각이고 버려야 할 관점이다.”

문제는 단어가 바뀌어서 같은 것들에 대하여 새로운 단어들에 익숙해 지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같은 것들을 이야기 하지 않고 있습니다. 뜻 자체가 변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진자의 흔들림 속에서 사람들은 적나라한 진실을 피하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것들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절실히 도움이 필요합니다.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핵심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들을 계속 찾아내야 합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에베소서에 나오는 “바른 교훈”을 설명할 때, 그는 “바른”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hygien이라고 말했는데, 그 단어에서 우리는 “위생 (hygiene)”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유진 목사는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맡은 사역은 정직하고, 건강하고, 깨끗하고, 복음적인 단어로 바른 교훈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는데 … 그것은 단어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종종 더글라스 크플랜드가 1994년에 쓴 단편 소설 신 이후의 삶 을 읽습니다. 그는 19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말까지 태어난 분들(에헴…저는 아닙니다!)을 “X 세대”라고 칭한 사람입니다. 크플랜드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소설은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모든 것-직업, 여자친구, 철학, 사람관계-을 시도하는 한 사람의 상당히 답답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시도를 하고 좌절하고 절망 속에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제-여기 저의 비밀을 공개합니다. 제가 절대로 다시는 달성할 수 없다는 솔직한 심정으로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조용한 방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 비밀은 제가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그것은 제가 아프고 저 혼자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는 것을 도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제가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친절하도록 도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제가 더 이상 친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들은 건강해 보입니다, 최소한 신선하고 정직합니다. 크플랜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라는 것을 쓰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속보: 인간은 그가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추가 속보: 예수님 안에서 필요가 충족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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