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예배드립시다

저는 매 주일 이른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하는 일과가 있습니다. 일종의 의식과 같은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물론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시작을 합니다). 저는 교회에 아침 5시 40분에 도착합니다. 어둘 때에 도착해서 촛불을 켜고 묵상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처음 하는 일은 이웃 도로로 향하는 자동차 드라이브웨이에 오래된 안내판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그 안내판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그 안내판은 창고 선반에서 찾았는데 레트로라고 불리우기에는 충분한 것입니다. 그래도 최소한 큰 화살표와 함께 “여기가 교회”라고 적혀 있고, “오전 10시”라고 적혀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10시 30분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만, 우리가 예배시간을 바꾸었을 때, 테이프를 사용하여서 3자를 0으로 만들었습니다. 매 주일 아침 동이 트기 전에 저는 간판을 꺼내서 주차장을 가로질러서 밝아지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가져다 놓습니다.

가끔 저는 검정가운을 입은 시골 교구목사가 된 제 모습을 상상합니다. 검정가운을 입고 교회 종을 치면서 이웃들에게 예배시간을 알리는 모습 말입니다. 그저 상상할 뿐이지요 … 왜냐하면 우리는 시골에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저는 20년동안 가운을 입지 않았습니다. 저희 1층짜리 교회는 종탑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기가 교회”라는 사인을 내다 놓는 것만이라도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마치 종소리 같은 것이지요.

요즈음 교회 지도자들은 문화적으로는 예민해야 하고, 심리학적으로 훈련되고, 신학적으로 연관성이 있어야 하고, 성경적으로 지식이 있어야 하고, 사회적으로 듣기 좋아야 하고, 정치적으로 옳아야 합니다. 저는 이런 것들에 많은 노력을 해 왔으나, 최근에는 특별히 사회적이나 정치적인 것에는 의미가 거의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들이 단순히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초청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매 주마다, 매 달마다, 매 해마다 깨닫게 됩니다. 초청 자체가 문화에 반하는 행동입니다. 예배를 계획하고, 스텝들을 감독하고, 예산을 짜고, 지도자들을 훈련시키고, 제자의 삶을 격려하고, 상담하고, 기도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들은 말할 것도 없이 신앙공동체 리더쉽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저는 그것들을 등한시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수년 전에 인터뷰한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매 주일마다 강단에 서서 “하나님께 예배드리십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말이 저의 노력, 저의 상상력, 그리고 제 생애를 구성하는 데 가장 우선이 되지 않는다면, 저는 더 이상 목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다른 직책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회중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을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것을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 예배는 바로 우리 자신이 새롭게 되는 장소입니다. 우리가 그 새롭게 되는 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 목사직은 아무런 소망이 없게 됩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다 하더라도, 결점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적에게 가담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본적인 사역를 중단하는 것입니다.”

아이고야. 정말 심한 말씀입니다 … 그러나 우리는 새겨 들어야 합니다. 모든 사역에 부분적으로 성실하게 일하지 않음으로, 목사들에 대한 미국민의 신뢰도는 최근 갤럽 여론조사를 믿는다면 27% 밖에 안 됩니다. 미국민들이 그 누구든지 신뢰하지 않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목사들에게는 큰 타격입니다. 국회의원들이나 전화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신뢰지수가 더 낮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물론, 쉽게 비판하고 자신들의 의견에 반하는 사람들을 쉽게 쫓아내는 현재의 양극화된 환경은 애초부터 신뢰가 거의 없게 만든다는 것을 뜻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도덕적인 추문에 휩싸이는 것도 신뢰도를 더욱 떨어지게 만듭니다. 손해가 되고 파괴적인 죄는 종종 사실이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확실하게 들어날 때까지 공개적으로 부정합니다. 그 결과로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을 의심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의심하도록 내 버려 둡니다. 우리 지도자들의 도덕적인 삶이 무너질 때, 교회 전체의 전도의 길을 막게 됩니다.

그럼에도, 저는 신뢰도의 하락이 추문으로만 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덜 확실한 원인들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 지도자들이 단순히 우리의 초점을 흐리게 된 것은 아닌가요? 우리가 연관성을 갖는다고, 심리학자나 엔터테이너나 정치가가 되어서 복음과의 연관성을 잃어 버린 것은 아닌가요? 회중들을 예배로 초청하는 것만이 목사가 해야 할 의무가 아닙니다만, 그것은 모든 다른 것들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종차별주의를 반대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발언하고, 배고픈 자들을 먹이고, 이민자들과 같이 서 주고, 사람들을 대할 때 사람답게 대하도록 지지해 주는 것은 다 복음에 기초한 것입니다-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받고 확신한 복음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복음을 의미 있는 방법으로 우리의 문화 속에 전달해 주는 사람들로 만들어지고 변화됩니다. 만약 우리가 예배드림 없이 한다고 하면, 우리의 노력은 단지 행동주의가 될 것이며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앞에 인터뷰에 나온 피터슨 목사님의 목사직에 대한 직무설명은 단순합니다: “회중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을 하나님께 나아가게 합시다 “. 말은 간단하지만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주일마다 종을 치고, 일어서서 어떤 모양이든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시다”라고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명에 더 충실해지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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