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에는
저는 이 글을 매월 첫날에 쓰곤 했습니다. 그런데 사순절에 깊이 빠져 있다 보니 벌써 3월 15일이 되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저는 3월 16일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미국와 이스라엘이 이란과 전쟁을 시작한지 벌써 3주가 되었고, 레바논에는 맹폭이 가해지고 있고, UAE와 요르단, 그리고 카타르와 바레인, 쿠웨이트, 이라크와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미군기지가 폭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중동지역이 불꽃에 휩싸여 있고, 호르무즈 해협은 파괴된 군함들로 가득 찼고, 도시들은 수천 명이 사망자 (시민들과 몇 명의 미군을 포함하여)들로 널려져 있고, 수백만 명이 갈 곳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불가피하게도 이런 재앙에는 누군가 분명히 있는데, (왜 항상 미국사람들이 끼어 있는 걸까요?). 진부한 성경적 계산을 하는 크리스챤들은 이제 우리가 종말에 들어섰다고 말합니다. 다시 한 번 모든 현상들과 데이터를 집약해 보면 바로 계시록에 나오는 아마겟돈 전쟁의 날이 현실이 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현재 국가들이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과 일치하고 정교하게 현재 날자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 하루, 마지막 날.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크리스천 “인풀루언서”들이 자신들의 추종자들에게 자신의 추측을 내세우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참여 못 하는 휴거에 참여한다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휴, 이런 일들은 이전에도 많이 일어났었습니다. 매 세기마다, 매 세대마다, 서기 33년후에 10년 마다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어떻게”라는 것에는 통상 예언자들이 환난 가운데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가 들어 있습니다. “언제”라는 것에는 예언자의 정확한 예언을 제시하였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 100% 그 예언이 틀렸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그 고상한 예언자들이 잘못된 예언에 대하여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저를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종말은 반드시 옵니다. 언젠가 그 예언자들의 말이 맞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분간은 많은 성경 ’전문가들’이 미친듯이 예언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단지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을 말하는 것(마 24:36)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예수님도 모르신다면, 누군가가 확실하게 안다고 하는 것은 아주 교만한 것일 것입니다. 저는 이 일에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종말에 대한 이 모든 당혹스러운 추측은 저로 하여금 마지막 날에 대하여 더 중요하고 단단한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여러분 대부분 (앤과 저도 마찬가지로), 이제 생을 마감하시는 부모님들과 가족들과 친구들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들의 사랑하는 분들을 최근에 떠나 보내야 했습니다. 미국 유명한 시인, 소설가, 그리고 에세이를 쓰시는 분들 가운데 한 분이신 웬델 베리씨께서 91세의 나이로 생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직도 시를 쓰고 계시고 저는 이번 주에 그의 시를 보면서 작은 반전이 있고 상실에도 구원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No more as if I picture them
lighted mid-breath on a black page,
now the dead pass out of time.
The ones I loved are present to me
as living souls, and I to them,
as once in time we used to be
without my even guessing so.
Don’t comfort me. Against age and time,
by missing them I keep them with me.”
“숨을 고르는 찰나 검은 페이지 위에 불이 켜진 것을
더 이상 알아 보지 못할 때,
죽음은 시간의 흐름을 벗어납니다.
제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살아있는 영혼으로 제게 닥아옵니다.
저는 상상조차 못 했지만 그들에게 살아있는 영혼이었던 것을.
저를 위로하지 말아 주세요. 나이와 시간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함께 지니고 가니까요.”
저는 – 사람들을 슬퍼하고 그리워한다는 … 것이 실제로는 그들이 우리와 함께 머문다는 생각을 좋아합니다. 사람을 떠나 보내는 것의 슬픔을 해결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조금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목사라는 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a)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b) 좋은 죽음을 맞이하도록 가르치는 것
저는 목사로서만이 아니라 그것을 좋아합니다-특별히 좋은 죽음을 죽게 한다는 것은 그들이 두렵거나 걱정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함께 걸으셨기 때문입니다. 좋은 인생. 그러므로, 그들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의 손에 그들의 생명을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마지막 순간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좋은 관계의 전도의 필요성은 모든 것입니다. 깊은 영성훈련에 대한 부름은 가치가 있습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형성적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언제 이 세상을 끝내실 것인가라는 주제보다 이런 일에 더 집중하고 싶습니다.
저는 언제 이 세상의 끝이 올지 모릅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죽고 유한하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끝이 언제가 올 것이라는 것은 압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사실, 그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저는 이 사실에 예수님께 소망을 둡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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