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질문들

아마도 여러분은 1세기 랍비였고, 초대 유대인 현자였던 아키바에 대한 이야기를 한 두 가지는 들었을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날 저녁, 랍비 아키바는 하루 종일 토라를 공부한 후에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 구절에 사로잡혀 몰두한 나머지 그만 집으로 가는 길을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알아 차리기 전에 이미 그는 로마 군대 요새의 정문에 서 있는 것을 알았고, 점령하고 있는 적들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랍비 아키바가 길을 돌이켜서 집으로 향하려고 할 때, 로마 군인 보초가 정문 위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는 누구냐?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놀란 랍비는 그저 말을 더듬으며 “뭐라고?”라고 말했습니다. 보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너는 누구냐?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랍비는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데 얼마나 월급을 받고 있습니까?” 당황한 보초가 대답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드라크마를 받고 있소.” 그 말을 들은 랍비 아키바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매일 아침마다 내 집 문 앞에서 그 두 질문을 해 주면 내가 두 배를 지불할께요!”

저는 이번 주에 소위 랍비 아키바 같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프랭크라는 사람과 커피를 나누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프랭크는 (토라를 공부하면서 생긴 것은 아니지만) 너무도 긴 시간 (수 년간)을 보내면서 무감각의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프랭크는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몇 번씩이나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그는 30대에 (로마군 요새 앞은 아니었지만) 완전히 막힌 길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새인가 프랭크에게 “너는 누구냐?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보초의 소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목소리였습니다만)와 똑 같은 내용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일로 프랭크는 결국 자신을 찾으시는 하나님께 응답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고 결국 주일 아침에 저희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전 인생을 복음의 렌즈로 보게 되었고, 뛰어난 질문을 하면서 이 세상의 모습을 전혀 다른 곳으로 발견하고 있습니다. 절대 프랭크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너는 누구냐?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제가 커피를 마시면서 프랭크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 놀랍게 신선하게 느겼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프랭크와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더 있을까? 비록 그들이 보여주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더라도, 내 주위에 얼마나 더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여행을 시작하고 함께 여행을 할 사람이 필요할까? 사실, 얼마나 많은 우리 자신들이 아마 대충 이해하고 … 아니면 최근에 그들과 함께 씨름하지 않고 있는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 관계를 앞에나 중심에 두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의 소명이란 것을 아는 것,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예비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서 미지의 광야로 들어가는 것이지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저는 최근에 우리가 처한 문화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추후 몇 년 동안이 무슨 의미일지를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왕국생활을 산다는 것이 어떤 모습일까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자꾸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는 것을 장려하는 많은 일들에 관심을 쏟게 됩니다. 제가 Luddite (저는 아닙니다만, 아마도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라고 불려지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저는 AI가 인생의 곳곳에 침투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으로서의 역할이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운전사가 없이 자율주행을 하는 차를 봅니다. 글쓰는 것을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작성을 합니다. 영상도 실제가 아닌 것인데,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로봇이 생산을 담당합니다. 모든 회사들이 AI 음성으로 고객상담을 합니다. 이번 주에 저는 사람들이 AI봇과 ‘관계’를 맺는 것을 시작한 것에 대한 글들을 보았는데, 문자 그대로 도구를 통하여 AI와 데이트를 하면서, 그들이 겪고 있는 고독 전염병을 대치할 것으로 받아 들이거나 심지어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절반이 고독을 경험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저는 그 해답이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것은 동정과 인내와 사랑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그 모습대로, 우리는 인간관계에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이 십년동안 하나님의 왕국 사람들의 가장 절실한 도전이고, 엄청난 기회이고, 중압감있는 책임일 것입니다-사람을 … 사람답게 되도록 돕는 것이지요. 그것은 매일 아침마다 집 문 앞에서 이 질문을 하는 것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너는 누구냐?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리고 어떻게 되는가 보기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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