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것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정말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나눴던 부활절 인사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 귀에 쟁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리이스 정교 형제자매들이 서로 만날 때 장소에 상관없이 부활절 후 40일 동안 통용 인사로 사용하는 것을 기억할 때 충격을 받습니다. 트레이더 조 마켓에서, 길거리에서, 주차장에서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정말로 부활하셨습니다… 40일 동안을 말입니다! 우리는 두번의 주일에만 하더라도 잘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40일을 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부활이 정말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사순절/부활절 기간을 추가로 말씀과 서술과 예배로 지내고, 이번 주는 제 친구와 함께 짧은 도보여행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테일러 산은 태평양 서북지역에 온 사람들에게는 산이라기 보다는 언덕에 가깝습니다만, 한 시간만 걸어 올라가면 1,500 피트 높이를 올라가서 해변가가 보이는 소노마 카운티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됩니다. 내려오는 가파른 언덕 길에서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니면서 사업을 하고 있었을 때, 저는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 라이프 사역에 몇 년 동안 자원하여 일하고 있었습니다. 두 해를 고등학교 학생들을 말리브를 넘어서라는 영 라이프 백팩 프로그램을 통해서 브리티쉬 콜롬비아와 카나다 로키 산맥으로 인솔해 갔습니다. 우리는 훈련된 두 명의 가이드와 함께 일 주일 동안 놀라운 자연을 돌아 보았습니다. 우리 탐험은 프린세스 루이사 호숫가(해면 높이)에서 시작하여 이틀 꼬박 등산을 하여 4,000에서 5,000피트 평원에 올라가는 것이었고, 거기에서 정상들을 기어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높은 곳을 올라가면…결국 내려가는 가게 되어 있는 것이었죠. 하루 종일 우리는 화강암 슬라브로 구성된 산을 반복해서 8시간을 내려가야 하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우리 대부분은 본능적으로 뒤로 젖혔고 백팩의 무게로 뒤로 주저앉았습니다. 결국, 가이드 중 한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말을 해 주었습니다. “잘 들어요, 뒤로 넘어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  여러분의 등산화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었습니다. “무슨 말이지요?” 그녀는 “여러분의 등산화는 바위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걸 신뢰해야 해요. 여러분이 앞으로 숙이고, 내려갈 때 여러분의 등산화에 무게를 실어 주어야 해요…그리고 등산화가 잡아 주리라고 믿어야 해요. 처음에는 잘못된 것처럼 느껴질 꺼예요.”

그 말대로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틀린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맞았습니다-오직 해야 할 일은 믿는 것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등산화에 무게를 싣도록 앞으로 숙이는 것이었습니다. 등산화가 미끄러지지 않을 때, 우리는 큰 바위산을 내려 갈 수 있었고, 스파이더 맨이 빌딩 벽을 타는 듯한 느낌을 조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등산화를 믿어라.

오늘 날 이 세계는 마치 화강암의 수직 벽을 내려다 보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주제를 선택해 보세요-전쟁, 집단학살, 기근, 수백만 명의 이재민, 공포, 인종차별, 환경문제, 시위대, 예수님의 말씀으로 포장된 애국주의. 엉망진창입니다. 위험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높은 산 평지에 올라서 텐트를 치고 기다려야 할 상황입니다. 그것이 안전하니까요. 그러나 부활절을 지낸 이 며칠 동안, 저는 그것은 우리가 해서는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결코 부활이 안전하게 우리가 승천할 때까지 조용히 엎드려 지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살거나 죽거나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처럼 깊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뒤로 기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기울일 수 있는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정을 쌓고, 예수님을 만나도록 사람들을 초청하고, 캠페인을 하고, 투표하고, 저항하고, 기부하고,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 등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게 보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정반대로 진행이 되고 있을 때 어떻게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바른 도덕을 만들고, 희생적으로 사랑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 어떤 때는 예수님을 신뢰한다는 것의 위험성은 매우 큽니다. 오늘 날은 우리가 등산화가 잡아줄지 시험해 볼 수 있는 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신뢰에 대하여는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잠언 3장, “너는 마음을 다 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라.” 이사야서 26장,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시편 56편,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고린도후서 5장,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저는 여러분의 인생의 어떤 부분이 위험한 급경사의 화강암인 줄도 모르고, 어떤 부분이 여러분의 짐을 무겁게 만드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것은 인간으로서 리더로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신뢰를 갖도록 부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등산화는 우리를 붙잡아 줄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숙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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