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저희는 우리 모든 자녀들, 손주들과 함께 시애틀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바숀 섬에서 삼일 동안 지내고 돌아왔습니다. 날씨는 환상적이었고 경치도 너무 좋았으며 함께 한 시간은 정말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두 살 짜리 손녀 엘리와 함께 삼 일을 보낸 것은 정말 뜻깊었습니다. 저는 제 눈 앞에서 손녀가 매일 성장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가 있었습니다. 엘리는 모든 걸 다 하고 싶어해서 모든 것을 관찰하고, 빠진 곳 없이 뛰어다니고, 말을 하려고 단어들로 문장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정말 매혹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두 살짜리가 그러하듯, 무언가 관심이 가고 재미가 있으면,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도 호기심 많은 죠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학교버스에 대한 책도 몇 번을 읽을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가족들 이름들과 과거의 행적들이 적힌 노트를 읽노라면 끊임없는 공연을 보는 혜택을 얻었습니다.
엘리가 또 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단어는 “또 다시!”라는 말입니다. 아저씨(사실은 저입니다만)의 다리를 기어 올라가서 몸을 되돌려서 바닥으로 내려 옵니까? 다시! 또 다시! 마당에서 잡기 놀이를 합니까? 다시! 또 다시! 또 다시! 매번 반복할 때마다 마치 처음 하는 것처럼 기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 단지 아저씨의 기력이 그 요청에 따르지 못 해 느려질 뿐입니다.
물론 제가 처음으로 이 사실을 안 것은 아닙니다. 1세기 전에, G.K. Chesterton은 정설이라는 제목의 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린이들은 풍부한 생명력을 갖고 있기에, 적극적이고 자유한 심령을 갖고 있기에, 그들은 똑 같은 것을 반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항상 말하기를 “다시 해요”; 그리고 어른들은 거의 죽을 정도에 이르기까지 반복해서 합니다. 어른들에게는 단조로움을 만끽할 만큼 강하지 못하지요. 그러나 아마도 하나님은 단조로움을 만끽하실 수 있을 만큼 강하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매일 아침마다, 태양에게 “다시 하거라”; 그리고 매일 저녁마다, 달에게 “다시 하거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가능합니다. 모든 데이지 꽃이 똑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데이지를 하나 하나 따로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만 결코 하나님은 만드시는 것에 싫증을 내지 않으십니다. 아마도 하나님에게는 어린 아이와 같은 영원한 식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늙었지만, 우리 하늘 아버님은 우리보다 훨씬 젊으십니다.”
엘리와 체스터톤 둘 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매일 같이 시간마다 나쁜-긴급-속보를 전해 주지만, 우리는 선하고 아름답고 옳고 … 그리고 재미있는 일을 반복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어려운 일들을 외면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의미있고 사랑스러운 일에 깊이 그리고 정기적으로 투자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우리가 파괴하는 많은 일들로 소일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무언가 다른 것을 건축하고 있는지요? 이 세상은 때때로 창조적이 새로운 것들을 우상화하고 이전에 행해진 것들을 반복하는 것은 고리타분하고 앞날이 막힌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보십시요, 그것은 가장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고,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교회생활이나 비지네스 생활가운데, 무엇이 “그래요, 주님. 다시 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지요? 그리고 당신의 영혼 속이나 노력 속에 성령의 숨결이 다시 불어와 하나님께 무언가를 기대감 속에서 바라게 되는지요?
“어린아이의 영원한 식욕”은 하늘나라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이 점에서 우리보다 앞서 갔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닥쳐오는 극한의 도전과 세상의 어려움을 직접 겪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빌립보 교회에 쓴 편지에는 이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이것들을 생각하라 (빌립보서 4:8).”
이것은 마치 우리가 모든 다른 것들에 균형을 맞추는 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 주위에 너무나도 무거운 것들이 많이 있는 이 때에 우리는 단 한 번이나, 여기나 저기에서가 아니라 … 다시 “이것들을 생각하라”는 말씀을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또 다시. 또 다시.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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