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속의 고요함

혼돈 속의 고요함

목회 동역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 24권        2023년 5얼 10일       단 바움가트너

혼돈 속의 고요함

 저는 지난 주에 펠로우쉽 커뮤니티 전국모임에 참석하고자 택사스 플라노(달라스 인근)에 갔었습니다. 도착한 첫 날 아침에 주위를 돌아볼 겸 운동을 할 겸 조깅을 하였습니다. 호텔에서 이번 모임이 열리는 그레이스장로교회로 가는 경로를 찾았는데, 거기에서 호텔 주위의 바쁘고 시끄러운 환경에서 벗어나서 사랑스런 플라노 이웃지역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집들은 빨간 벽돌집들이었고, 드라이브웨이에는 빨간 벽돌로 된 우체함들이 있었습니다. 잔디밭과 조경은 아주 잘 관리되어 있었고, 길가에는 아주 적은 숫자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고 새들이 지저귀며 봄에 피는 꽃들이 만발해 있고 아직 아무도 깨지 않았습니다. 사랑스럽고 고요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 이웃지역을 지나서 아주 멋있는 공원을 이리 저리 지나고 나니 찾는 교회가 나왔습니다. 다시 방향을 돌려서 호텔로 되돌아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큰 거리로 돌아오면서 파크 길을 따라 프레스톤으로 가니 다시 바쁜 현실로 들어 갔습니다. 3차선 왕복도로와 좌회전 차선, 신호등, 빨리 달리는 차들과 트럭들이 사방에 있었고, 아침 출근길의 차량 소음이 시끄러웠습니다. 세 대의 경찰차가 어떤 차를 길가에 정차시키고 아마도 마약 수색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빵빵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났습니다.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의 전혀 다른 환경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고, 우리 안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불협화음이 아니라 평화스럽고 조용히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채워져서 평온하고 친절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혼잡 가운데 살게 만듭니다. 우리는 우리 내면의 세계가 외면의 세계에 영향을 주기를 원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반대로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를 따르는 자들은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아마도 아주 나쁜 환경에서는 오직 벗어나기만 바랍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소금과 빛이 되라는 부름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 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냥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과 사역에서 어떻게 활발하게 할 수 있을까요? 여기 최근에 떠 오른 몇 가지 생각을 적어봅니다:

  • 뉴스 중독에서 벗어나자: 저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완전히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얼마나 볼지를 통제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텔리비존과 뉴스를 꾸준하게 보거나 컴퓨터에 업데이트를 받거나 “긴급 속보”를 텍스트로 받거나 하면 (긴급성을 느끼게 하려고 “긴급속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을 아실 겁니다.), 매일같이 하루에 20번 뉴스를 보게 될 것입니다. 너무 많습니다. 정보를 받는다기 보다는 중독에 가까운 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업데이트를 할 것인가를 제한하여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소식을 우선순위로 보지 않는다 해도 세상은 돌아갑니다.
  • 안식을 누리십시요. 뉴욕시에 위치한 뉴욕소망교회 담임목사인 현드루목사가 택사스에 열린 컨퍼런스에서 “천천히 함의 영성”에 대하여 강의를 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의 라이프 리듬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어느 지역이든지, 무슨 직업이든지, 가정생활이나 커뮤니티 일이나 상관없이 너무 쉽게 리듬에 빠지게 됩니다: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리듬과 선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쉬고, 일하고, 쉬고, 일하고, 쉬고. 쉬는 것은 우리가 일을 더 잘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하고,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만듭니다. 안식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정말 큰 선물입니다. 드류목사가 말했듯이 안식은 우리가 늘 하는 것처럼 그저 하루를 쉬는 것이 아니라, 안식은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하루가 되어야 합니다. 평화와 기쁨과 묵상과 예배를 가져오는 것들을 즐기는 것이 바로 안식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 심호흡을 하세요. 저에게는 통상 독서를 통해서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긷게 됩니다. 아무 것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매우 잘 상상하고 생각하고 반영하는 분의 글을 읽는 것입니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이지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독서하는 시간을 약속시간으로 잡아 스케쥴 북에 적는 것을 보았습니다: 금요일 오전 9-11, 토스토예프스키. 어떤 분과 커피약속을 하는 것처럼 약속시간으로 잡아 놓는다면 실제로 읽을 수가 있습니다. 어느 한 시간을 독서시간으로 정해 놓고 토스토예스프스키나 웬델 베리나 월러스 스태그너나 마릴린 로빈슨 같은 소설가이 책이나 메리 올리버나 제럴드 맨리 홉킨스나 데니스 레버토프나 크리스쳔 위만의 시를 읽으면 새로움이 생겨나지 않을까요?

이 밖에도 여러가지를 할 수 있는 것이 많겠지만 현재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들이 많은 줄로 믿습니다. 어떤 것이 되던 간에 중요한 것은 의도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의 외면만이 아니라 우리 내면까지도 조용한 이웃의 거리 대신 바쁘게 돌아가는 거리에 언재나 머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부 이레니우스는 “하나님의 영광은 온전하고 생기 넘치는 인간에 있다”는 책을 썼습니다. 온전하고 생기 넘치는 사람은 조용한 영혼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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