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동역자 친구분들께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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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동역자 친구분들께 드리는

2021년 11월 7일        댄 바움가트너

 

저희 교회에서는 누가복음을 1년동안 공부해 왔습니다. 2020년 대강절에 시작을 해서 꾸준히 해 왔습니다. 2021년 부활절과 사순절 기간에는 십자가와 부활에 촛점을 맞추느라 쉬고 다시 누가복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누가복음 강해 설교 50편을 하고 거의 마쳐갑니다. 누가복음 강해설교가 요즈음에 권장하는 짧은 시간동안 하는 주제설교가 아니라는 것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동안 복음서에 빠져있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매주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저는 헬라어 성경을 번역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헬라어 성경 옆에 NIV성경을 펼치고 씨름해 왔습니다. 25년 전에 신학교에서 저는 평범한 헬라어를 공부하는 신학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멘토이자 헬라어 교수이신 쿨렌 스토리 박사님을 생각해서 계속 노력했습니다. 박사님은 제가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미 은퇴를 하셨음에도 계속 헬라어를 가르치시기로 동의하셨고 저는 그 분 강의를 듣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박사님은 저희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고, 편지를 쓰시고 만나보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심지어 박사님은 체육관에 오셔서 저와 함께 농구를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H-O-R-S-E 게임을 하곤 했습니다. 물론 박사님은 헬라어로 I-P-P-O-S라고 말하라고 하셨지만 말입니다.

이번 주일예배에 누가복음 17장을 설교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지도자로서 훈련하는 내용입니다. 신앙공동체의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것이지요. 여기에서 저의 섣부른 번역작업이 빛을 발했습니다. NIV 성경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러나 그 번역은 조금 약합니다. 문자적으로는 “스캔들이 안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말입니다. 불가능하다.

교회지도자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교회는 실족할 뿐 아니라 스캔들이 일어납니다. 흠집이 생길 것이고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때로는 난처하고 불편하고 부서지고 아연 실색하게 될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전도하는데 이 문구를 사용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요. 얼마나 한심한 문구입니까? “우리 교회는 놀랐습니다! 흠집투성이입니다. 불편합니다. 부서졌습니다. 불가피한 스캔들이 있습니다. 오셔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일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위협하는 것이지요. 상황, 음모, 개인간의 갈등, 신학적인 충돌. 어떤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무기력하게 만들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만들어 내기도 하구요.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제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1. 최근 저는 어느 한 수련회에서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었는데, 우리가 들은 교회 이야기들 가운데 눈물과 분개, 그리고 절박한 웃음없이는 못 들을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신뢰 부재, 성문제, 지도자의 부족함, 미성숙, 등등입니다.
  2. 또한 제 근처지역에 있는 다른 그룹의 목회자들과 시간을 보내었는데, 대부분 계속되는 코비드 사태로 인해 힘들어하고, 미지의 해역에서 교회를 하나로 되게 하고, 누가 이사를 갔고 누가 집에서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리는가를 파악하고 만날 수 없는 분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3. 제가 시무했던 교회마다 어떤 문제들이라도 저의 부족함을 느끼고 무릎을 꾾게 만들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자기는 적합하지 않으니 아론이 백성들을 이끌게 해 달라고 말한 것을 제가 얼마나 공감을 하였습니까?

 

실족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저는 그 말씀이 맞는 말씀이고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증거가 더 필요하다면 우리 언론을 보면 됩니다. 제가 아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Christinaity Today의 The Rise and Fall of Mars Hill 방송을 보고 계십니다. 그것이 아니라도 The Atlantic Monthly에 실린 Peter Wehner의 “복음주의 교회가 부서지고 있다” 글을 읽었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모든 곳에서 자기 발등을 밟고 있습니다. 잘못된 우선순위, 부패한 마음, 미약한 신학, 시시하게 정치로 대치하는 실패한 지도자들, 실패를 칭찬해 주는 문화 안에 있는 신앙을 옹호하는 애국주의. 스캔들은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목사로서, 리더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교회를 어떻게 인도하여야 합니까?

누가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정말 큰 전략적인 실수를 하고 계십니다.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어떻게 신앙공동체를 인도할 것인가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면서 예수님은 그 당시에 통하지 않는 단어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거의 쓰여지지 않는 단어들입니다. , 경계, 회개, 용서. 시대에 맞지 않고 지루한 부머세대의 언어입니다. 구식이지요. 창조-타락-구속-완성. 새롭지 않습니다. 영화스럽지도 않고 멋지고 인기를 얻는, 혁신적도 아니며 최첨단한 말도 아니지만 예수님은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이후에 그들 앞에서 살고 죽으십니다.

우리는 복음이 무엇인가를 알고 설교하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무너진 사람들을 돌보는 무너진 사람들이기에 여기 저기에서 복음대로 살면서 죽어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힘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평강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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