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동역자들에게 드리는 글

목회 동역자들에게 드리는 글

2021년 7월 7일

댄 바움가트너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아요. 내가 목사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확실했었지만 지금은 불확실합니다. 저는 목사로서 하지 않을 일을 바쁘게, 아니 너무 바쁘게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다섯 명 친구목사들의 각각 반응을 취합하여 만든 말입니다. 그들 모두가 코비드로 인한 고립과 격리, 마스크 착용, 그리고 가상 모임에서 벗어 나오려고 노력하는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목사라는 모습이 어떻게 보이거나 느끼게 될 것인가? 맞습니다. 우리는 같은 배에 타고 있습니다. 15개월동안 저는 예배 영상 제작과 실시간 방송 제작, 줌미팅 사회와 북그룹 줌미팅과 직원 줌미팅을 하면서 이제는 줌에서 단식을 해야겠다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토론의 중심은 다시 여는 단계에 대한 전환에 대한 것입니다. 코비드에서 벗어나고 있는데 목사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저는 제가 받은 소명에 맞게 살고 있는 것처럼 느낄 때가 최근에 언젠인가를 돌아보려고 했습니다.

몇 주 전에, 론이 죽었습니다. 그 분은 교회의 오랫동안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분이었습니다만 저는 그 분이 알츠하이머 병으로 극적으로 바뀌어진 모습만 보았습니다. 론은 예배드리는 것을 사랑했고 마지막 순간에는 묵상기도 시간에 본당에서 인사를 큰 목소리로 외쳤고, 아마도 병이 걸리기 전에는 맞는 음으로 찬양을 했었을 텐데, 틀리는 음으로 격정적으로만 찬양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참을성 있는 아내 다이엔은 그가 죽을 때까지 옆에서 한 걸음씩 같이 걸어주었습니다. 론이 죽은 날 그녀를 방문했을 때, 우리는 그녀의 여동생과 함께 부엌 테이블에 앉아서 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울고 웃고 기도를 했습니다. 다이엔의 사려깊음과 하나님께 대한 깊은 믿음의 분명함이 저에게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 집을 떠날 때,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을 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이크는 우리 장로님들 중에 한 분이신데, 변호사이고 젊은 아빠입니다. 지난 주에 야구경기를 함께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저는 좋은 시간과 대화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아침에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제 아이 11살 짜리들 두 명이 같이 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론. 저는 집에 세 명의 초등학생들의 아빠인 젊은 가장이 바쁜 직업과 가족들의 뒤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으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고, 그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매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고 좋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제 데이브가 인사차 깜짝 방문을 하였습니다. 그는 성조기 문양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성조기는 아니었지만 독립기념일 주간에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데이브는 매 수요일마다 우리 교회의 잔디깍는 기계에 올라 앉아 전체 잔디를 깍는 80대의 은퇴한 엔지니어로 교회의 성자 중 한 분입니다. 보통 일을 끝내고 저와 대화하고자 들리곤 하십니다. 데이브는 대화거리를 찾는데 약간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대화할 거리를 찾아내곤 했습니다. 데이브가 자기가 몇 년 전에 이혼을 했다고 말한 것은 제가 부임한지 6개월이 지나서 입니다. 그리고 12개월이 지났을 때 자기 아이를 영아 돌연사 증후군으로 잃어버렸다는 것과 그 후로 모든 것이 내리막이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저는 문을 열어 놓고 조용한 교회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개를 운동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일을 하려고 차를 몰고 가는 이웃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실례합니다. 여기 교회 맞지요?” 밝은 녹색의 조끼를 입은 키작은 남자가 밖에 서 있었습니다. 그가 정말 필요한 것은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맞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을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지요?” 칼로스. 칼로스는 노랑색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운전사이고, 샌프란시스코에서 특별 취급이 필요한 아이들을 교회 근처에서 열리는 행사에 태우고 왔는데, 공중 화장실이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그는 일하러 갔습니다.

칼로스가 떠난 후, 시드니와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웃에 살고 있고 암회복에 관련하여 음성치료와 명상수업을 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두 번 교회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지를 이메일로 물어왔습니다. 그녀에 대하여 더 알게 된 것은 그녀 스스로 몇 년 동안 암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대체 치료에 대하여 말할 때에 저는 그녀의 영성이 여기저기에 차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조용하게 그녀는 최근 오랜 남자친구와 아픈 헤어짐을 가졌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정말 힘든 한 해입니다. 저는 그녀에게 그녀가 교회를 사용하는 것이 축복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우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해야 하고, 예배순서를 짜야 하고, 지휘자를 구하기 위한 인터뷰를 해야 하고, 예배일정을 완성해야 하고, 우리 봉사팀을 다시 구성하고, 코비드 동안에 잃어버렸던 연결과 모멘텀을 다시 찾기 위해 당회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최근에 언제 내가 목사답게 느껴졌는가를 돌아볼 때,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론과 다이엔, 그리고 마이크와 그 아이들, 그리고 데이브, 그리고 칼로스, 그리고 시드니를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