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친구분들께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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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친구분들께 드리는 글

2022년 1월             댄 바움가트너

 

이곳 북가주에서 성탄이브예배를 마치고 작은 공항으로 가서 고향인 시애틀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아내 앤과 우리 아이들 그리고 두 가족이 함께 연말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아차,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했습니다. 또한 매우 드문 눈폭풍이 시애틀을 강타했습니다. 코비드가 가족 모임을 못 모이게 했고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눈길을 많이 걷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미 여러분들에게 우리가 겪은 것은 대부분 겪으신 일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또 다른 폭발적인 팬데믹이 우리에게 생겼습니다. 환자수가 심각합니다. 특별히 저처럼 대면을 선호하는 목회자에게는 목회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질문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오래 지속이 될것인지? 영원토록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것인지? 제가 다시 교인들을 심방할 수 있는 것인지, 그분들의 미소나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인지? 여러분들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저는 매우 깊은 수렁에 빠져 있음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 상황을 대처할 아이디어나 도구 또는 탈렌트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목회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저의 힘과 기쁨이 약화됩니다.

오늘 아침 저는 장로교인들에게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바로 아래인 바나연구소의 통계를 읽었습니다. 릴리연구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들 중 38%가 목회를 그만 두고 다른 직종을 찾으려는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류교단에서는 62%까지 그 비율이 올라갑니다. 저는 그 통계에 속하지 않지만 저만이 깊은 수렁에 빠져있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의 소명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두 가지 일이 최근에 발생했습니다.

첫번 째 것은 최근에 쭉 생각해 오는 것입니다. 깊이, 영적인 깊이입니다. 저는 어떤 값을 치루더라도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결심한 사람들보다는 정치인처럼 영적 겉치장을 한 얄팍한 크리스챤 커뮤니티의 목소리로 인해 피곤해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깊이. 예수님께로 더 깊이. 이 주제는 사실 제가 최근에 참석한 리더쉽 갱신 프로그램의 주제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상황이 예수님께로 더 가까이 가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면? 좋은 일, 일상적인 일들, 비극적인 일 모두가 우리의 믿음을 더 깊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면? 이것은 로켓과학이 아니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아닙니다. 제가 믿기에는 우리 모두가 긍정하는 하는 것이고 추측하기는 그저 지나치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 모습들을 저는 수련회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주제가 개인적으로 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중에 한 분이 매우 간단한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분은 은퇴를 하셨고 몇십 년을 같이 지내신 그분 사모님은 작년 5월에 심각한 질병을 가진 것으로 진단되었습니다. 그리고 급작스럽게 12월에 하나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생생한 고통과 상실이 그분의 얼굴과 그분이 간증하는 목소리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슬픔. 그분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거의 어떤 것이든지 막강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멈칫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그분에게 이 큰 상실을 통하여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하는지에 대하여 깨닫게 하려는 마음을 주셨다는 사실을 간증할 때, 저는 숨이 막혔습니다. 과연 제가 훨씬 더 쉬운 내 인생의 환경과 상황을 저같은 경이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것은 평범한 것입니다. 자그마한 우리 교회는 즉흥적으로 1월 6일에 기도회를 갖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새해 첫주간이고 와싱톤DC 반란 1주년이기도 하고 주현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신속하게 광고하고 생방송이 가능한지도 확인하였습니다. 본당에 원형으로 안전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의자를 배치했고, 문을 열어놓았고, 선풍기를 켜고 마스크를 쓰도록 했습니다. 15명의 교인들이 출석을 했고 12분 가량이 생방송으로 참여를 했습니다. 간단한 성경말씀과 주로 통성기도로 진행을 하였습니다. 회개와 찬양, 나라를 위한 기도, 그리고 간구. 한 시간 정도 진행을 하였습니다.

중반쯤 지났을 때, 저는 저 자신의 깊은 속마음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팬데믹 기간동안 어떻게 목회를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고, 교회가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하고… 그런데 갑자기 떠 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려운 때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해야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두렵거나 상실했을 때 또는 불확실할 때에 우리는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영화로운 것도 아니며, 교회성장을 소개하는 책에 쓸 내용도 아닐 것입니다. 그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저는 캘리포니아 산타로사 북쪽 끝에 자리잡은 작은 교회의 15명의 소수 그룹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좋은 것이 무엇인가? 곧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지금 어디에선가 다른 교회들이 가정에서 모임을 갖고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북쪽에 있는 윈저에서 그리고 그 다음 힐스버그에서. 한 두 커플이, 몇 개의 그룹이, 몇 개의 교회 모임이 모여서 오늘 밤 기도할 것이다.” 계속해서 북가주와 오레곤 해안가와 와싱톤주, 온 나라에서 기도할 것이다.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려울 때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본당에서 마지막 아멘을 말할 때 저는 낯이 익고 굳건한 반석 위에 선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내안에는 수렁이 없었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제가 예수님께 한 발짝 더 가까이 간 것입니다.

혹시라도 여러분이 62%, 아니 심지어 38%에 속하신다거나 혹은 여러분의 목사님이나 여러분이 아는 그 누구라도 목회에서 흔들리고 계시다면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도자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좋은 지도자들. 우리에게 화려한 새로운 테크닉을 주는 지도자가 아니라, 생생하고 신실한 말씀을 전달하고 기도하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지도자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려운 시기에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댄 바움가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