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동료분께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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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4월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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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이 말씀은 거의 경외에 가까운 조용한 거룩함으로 하늘에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산타로사에 있는 작은 교회 당회는 코비드 예방으로 인해서 한 장로님 가정의 후원에서 정기모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8명의 당회원은 화로를 중심으로 간격을 두고 둘러 앉았습니다. 당회를 시작하면서 시편 70편 1절: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말씀을 암송하도록 권면하였습니다. 당회를 진행하는 동안 네 다섯 번 큰 목소리로 암송하였습니다. 해가 지고 수많은 별들, 성단과 떠오르는 달이 밤하늘을 장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타오르는 화로에서 연기가 피어 올라가고 말씀도 따라 올라갔습니다. 간절한 기도, 바람, 의지하는 고백, 부족함의 인지.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여덟 명의 당회원들의 조용한 말씀 암송을 들으면서 저의 마음은 부양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새 힘이 필요하였습니다. 저는 팬데믹 기간동안 심각한 의기소침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제가 하고 있는 목회나 교회, 교인들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의기소침이었습니다. 저는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사람이고 단점이 될 정도로 이상주의자입니다. 저의 신학적인 이해와 반대됨에도 불구하고 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대부분의 경우에 바른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팬데믹이 시작되었을 때, 저는 인간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때라고 진정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미국은 말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의 증가되었던 사악하고 분열된 국가의 삶을 분명히 팬데믹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 것이다. 바이러스를 공동의 적으로 가진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돌보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희생하고, 한 줄로 서서 같은 방향으로 나가게 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공공보건 당국자의 말을 들어야할지 아니면 정치인들의 말을 들어야할지, 마스크를 써야 되는지 쓰지 말아야 하는지,예방접종이 꼭 필요한 것인지 등에 대하여 기하급수적으로 양극화되고 극심한 당파주의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분열은 점점 더 깊어져 갔습니다. 거기에다가 인종차별에 대한 갈등과 지속되는 총기사건, 경찰의 과잉무력사용, 1월달 의회당 난입사건, 그리고 정치적인 구호와 진실과의 차이 등이 겹치면서 저의 이상주의자적인 소망은 점점 시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그런데 다음과 같은 간단한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아무 것도. 그렇구나, 환경이나 세팅은 달라질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이전에도 있었고 우리가 그 원인을 규정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죄, 입니다. 오래되어 먼지가 쌓이고 잘 쓰지 않는 단 한 글자가 우리의 상황을 아직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부패는 전혀 새롭지 않은 모습이며 같은 일이 반복해서 또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인을 분석하려고 노력을 하고, 낙천적이 되고, 다른 근본원인을 발견하고, 최신 치유방법을 찾는 대열 (더 많은 테크놀리지? 더 많은 교육?)에 참여해도 우리는 결국 같은 수렁에 빠지고 맙니다. 우리는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이 모든 것은 저로 하여금 단 한 가지의 실체적인 낙천주의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깨진 세상에 제공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도움입니다. 우리는 구세주를 앍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십자가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선함이 없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이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라고 유진 피터슨을 말했습니다. 우리의 소명, 즉 목사, 장로, 사업가, 교사, 간호사, 은퇴자로서의 특권은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서 문을 열어주는 일입니다. 사람들을 도와서 선함의 근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난 날의 전도란 사람들에게 지옥이라는 위협으로 겁을 먹게 만들어 천국으로 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전도방식이 비효율적이었고 이제는 아마도 가장 비효과적이고 먹혀들어가지 않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사람들이 걸어가게 함으로? 실망이나 홀로, 또는 자신중심적인 삶과 구세주를 모신 삶과의 차이를 보여줌으로? 이 생각들이 저를 다시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제 친구 한 분이 말하기를 “예수님 때문에 매일 아침마다 내가 누구고 무엇을 해야 되는지 압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 분은 많은 사람들이 평생 찾고자 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잘 행동하거나 좋은 일을 하는 능력에 대하여 실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느 때보다 복음이 더 필요한 때가 되었다는 신선한 깨달음에 크게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 구세주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우리만이 아닙니다. –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그리스도의 평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