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피아 헌의안에 대한 한 목사의 반영

올림피아 헌의안에 대한 한 목사의 반영

올림피아 헌의안에 대한 한 목사의 반영

제리 덱, 시온스빌 장로교회 담임목사, 시온스빌, 인디아나

약 25년전에 저는 신학생이었고 갑자기 목사로 부르심을 받은 소명으로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를 교수로 부르셨다고 믿어 왔었는데, 저를 인턴으로 따뜻하게 맞아준 미국장로교의 한 교회에 신학교 2학년부터는 교인으로 등록을 했습니다. 저는 보수적인 성령파 교회에서 자라났는데, 그 진보적인 교회는 저를 받아주었고 안수과정을 시작하도록 초청하였습니다. 저는 미국장로교가 저에게 맞는 교회인가를 놓고 고민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성과 결혼에 관한 토론의 진통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천천히 그 토론이 바로 제가 이 교단에 속하게 된 이유였고, 제 가족을 찾게 되었습니다. 어느 교단에서는 여성이 목회사역을 할 수 있는가와 일곱째 날 창조에 대하여 토론을 하였지만, 이 교단은 20년 동안 고민하던 가족의 문제를 문자 그대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열살 때 저의 아버님은 어머님을 떠났습니다, 제가 바로 알게 된 것은 아버님은 동성연애자였고 이혼을 원했습니다. 그 일 직후에 우리 가족은 신앙과 성정체성의 싸움의 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직접 그 싸움에 휘말리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떠남으로 생긴 고통과 상실감은 우리 가족에게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가 청소년 이었을 때, 차라리 집을 떠나는 것을 바랬는데, 사랑과 신앙, 진실과 용서, 육체와 영적인 문제의 복잡함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저히 방법이 없었습니다. 누구라도 자기 집에서 도망을 치더라도 완전히 탈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가정이 형편없어지더라도 결국은 자기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의견이 다르고 서로 반대여도 그것이 가족의 관계를 끊을 수는 없습니다. 마음으로는 가정을 떠나고 싶지만 이미 형성된 가족의 연은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 가족의 연 때문에 저는 십년 전에 우리 교단의 많은 보수적인 교회들이 그런 갈등이 없는 곳을 찾아 교단을 떠나는 것을 고려할 때 마음이 슬펐고 불안하였습니다. 어떻게 집을 떠날 수 있는가? 이 교단을 떠나는 것이 더 쉬운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고, 잠시동안이라도 이제 “순수한” 가족을 갖는다는 느낌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수함을 찾아가는 피상적인 길은 결국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은 순수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망가진 우리 삶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최소한 현재는) 좌파이든 우파이든 그들이 분명히 찾을 수 있고 그래서 거기에서 쉬고 번성하고 안전할 수 있다고 믿고, 순수한 초장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척박한 땅에서 번성하지 못 하고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성장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기만과 교만을 넘어가게 하는 사랑스러운 도전에서 오는 것입니다. 2011년에 제가 Presbyterian Outlook에서 우리 교단 지도자들과 진보파 지도자들이 보수파들을 향하여 분명하게 말하기를 함께 남아있기를 원한다고 쓰여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의 말 그대로 옮기면, “우리는 당신들이 떠나지 않기를 요청합니다”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액면 그대로 이 가족에 머무르라는 초청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이 가족, 이 교단으로 인하여 번성하였습니다. 신학적으로 다양한 동료들이 저를 사랑해 주었고, 도전을 하기도 하였고, 실망시키기도 했고, 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내 생각에 동조하는 동료들과 우리의 신학여행이 장애물이나 움푹 패인 곳이 없는 길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로 되어 있는 보수교단이 더 편하고 쉬울까요? 물론 그렇지요. 그러나 내 가족처럼 느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제가 원하는 것은 (제가 부름을 받았다고 믿는 것은) 안전이나 편안함이나 쉬움이 아니라, 제 모습 그대로 안주하는 것을 거부하는 공동체입니다. 좀 더 솔직해진다면, 지금 남아있는 보수파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상호간의 사랑과 용서 속에서 생겨난 이런 대화에 마음이 열려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교단을 떠나야 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우리의 곁을 떠난 분들의 고통을 참아내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학과 진실성을 따져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기로 결심하였는데 그 이유는 우리는 교회는 이데오르기나 정치적 규범, 우리 장로교인들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교리가 아니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중심은 언제나 그래 왔듯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부르셨던 제자들에게서 분명히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은 동질한 신앙에 집착하는 것보다 교제와 하나됨에 더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복음서를 많이 읽지 않아도 예수님은 주위에 제자들을 다양하고 망가진 자들로 선택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주님의 가족이었습니다.

우리 교단은 이제 또 선택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올림피아 노회에서 올라온 헌의안 (POL-001)은 성정체성과 결혼에 관하여 전통적인 입장을 취하는 우리 교단의 직분자(목사, 장로, 안수집사)들을 도태시키려는 시도입니다. (제 해석에 찬성하지 않는 분들도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솔직히 이 헌의안의 의도가 현실 표현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계략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 헌의안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말을 못 하게 하는 “순수한” 장소를 찾으려는 시도입니다. 저는 이 시도가 여행을 더 쉽고 더 편하게 하느냐에 대하여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도가 과연 그들이 바라는 평화를 실제로 가져 올 것인가에 대하여 묻고 싶습니다. 10년 전에 제가 선택했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좀 더 나은 순수한 초장을 찾을 것인지 아니면 우리 대부분이 살고 있는 망가진 가족들을 닮은 곳을 찾아야 할지를 분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헌의안이 우리를 가족이 있는 집으로 더 가까이 가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에게 한 때 남아달라고 부탁받았던 사람들에게 주는 퇴거명령인지를 고민하는 분들과 함께 진지하게 질문을 해 봅니다. 저는 이 가족을 사랑해 왔고 떠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머물러 있게 허락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매년 여름마다 저희 가족은 “할아버지 캠프”라고 불리우는 아버님 댁에서 일주일간 머무릅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가장 기다리는 일일 것입니다. 할아버지, 미스터 팀, 삼촌들과 아주머님들, 사촌들, 그리고 조카들이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지냅니다. 함께 먹고, 함께 웃고, 함께 말하고 듣고, 그리고 서로 깊은 차이가 낫는 것도 함께 나눕니다. 정말 멋있습니다. 그러나 실수하지 않는 것 역시 힘듭니다. 항상 쉽고 평안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간에 신뢰하고 양보하고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정말 아프고 힘든 결정, 즉, 서로가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관계 속에 남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을 압니다. 그 관계 속에 남아야만 우리는 서로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족이 하는 일이고, 나와 나의 가족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바라고 기도하는 것은 교단으로서 우리가 다른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다른 문화 간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보고 싶어하는 이 세상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